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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질병, 페미니즘 관련 에세이


<aside> ✏️ “이때 뒤따르는 것은 비장한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믿음이다. 나는 사람을 완전무결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믿음은, 아마도 불완전함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며 결코 서로 같을 수 없고 그렇기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접촉할 수"(디디 위베르만)는 없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상처를 각오하고 나서야 생기는 접촉의 가치에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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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내내 싸웠다. 그중 종종 떠올렸던 상대는, “장애가 어떻게 정체성이 될 수 있어?”라고 묻던 페미니스트였다. 여기서 굳이 그가 ‘페미니스트’였음을 적는 이유는 별 거 없다. 그 누구든, 인권에 관심이 있든 없든 간에, 화제가 장애의 영역으로 오는 순간 저런 말을 듣는 것이 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 그들의 논리는 대강 이러하다. 장애는 질병처럼 몸/정신의 절대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일 뿐이다. 그 상태에 의하면, 장애인(과 그 삶)은 비장애인보다 불편할 것이다. 더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더 힘들 것이다. 고로… 장애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 장애가 ‘정체성’이 될 수 있겠는가? 이 논리를 꿰뚫는 핵심은 ‘장애(인)는 비장애(인)보다 열등하다’다. 장애가 열등하냐고 물으면 고개를 저으며 선량한 표정을 지을 사람들이 순순히 장애는 정체성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뱉었다. 그래서 내내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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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불안과 함께 살아가기


<aside> ✏️ “오늘 연 문은 대학생이 된 뒤로 맞이하는 세번째. 누군가가 나에게 자연스럽게 술을 권할 때에도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지만, 그건 단순히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산수의 감각이라면, 정말 어른이 되었다고 거듭 생각할 때는 혼자서 병원 대기의자에 앉아있는 순간이다. 정확히는 대학병원. 더 좁게 말하면 대학병원의 정신의학과. /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나. 혼자서 대학병원 정신의학과에 들어가 초진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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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아침은 다시 우울감으로 시작되겠고,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는 억울할 정도로 피곤하고 졸릴 것이고, 사실 이 시간에 깨어서 다시 잠들지 않고 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자꾸 미래에 할 일을 계획하며 셈해보는 것도 모두 마음이 어지러워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도 힘들다고 쏟아낸 이제는 슬슬 졸리니까 잠을 좀 자고, 두 시간 뒤에 일어나서 약을 먹고, 무거운 마음과 몸으로 걸어서 밖으로 나가기 힘들면 휠체어에 앉아서 길을 떠날 것이다. 서러움과 아픔, 억울함과 고통은 행복한 삶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는 것 같으니 내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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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TV 프로그램, 도서 리뷰


<aside> ✏️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그래서 여성의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이 전시가 (당연히)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능성을 제시하고 전망을 깃들게 한다. 식수가 '여성적 글쓰기'는 과거 또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도달할 것이라고 조망하였던 것처럼. 나는 여성의/여성적/페미니즘 예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침잠하는 배타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역동하는 '여자'(빈칸이고 기호로서의 '여자')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인정한다면 말이다. 반-가부장제가 아닌, anti가 아닌, 모순되며 유동적이고 움직이고 꿈틀대며 버둥거리는 여성의 예술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이 쉽게 쓰이는 예술의 소재가 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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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한국 현대 사회의 과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어떤 경우에 그럴듯해보이는 추억과 대중문화를 주로 끌어오고 싶어하고, 학생운동이나 민주화운동, 또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사건 같은 역사는 배경 취급하고 싶어한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랬고 영화 〈써니〉도. 그러나 과거의 이야기를 굳이 현재에 다시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던코리아〉는 정면으로 부딪힌다. 물론 과거를 다룬다고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마음에 쏙 드는 사례를 발견해서 기뻤다. 이미지로, 영상으로, 아카이빙으로, 다시 말해 감각으로 복원한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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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은 "'한국다움'은 무엇인가?"인데, 1. '한국다움'은 일정부분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2. 그렇다면 기존에 형성된 '한국다움'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3. 앞으로 무엇을 '한국다움'으로 발견/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딸려온다. '한국'이라는 영역과 범주는 칼로 자르듯 정확히 구분해내기 어려운 것임과 동시에 무엇이 한국'적'인가도 쉽지 않은 질문이다.이것은 필연적으로 시간적 의미를 포함한 입장에서 나오는 관점을 담지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기도 하다. 인습(因習)이라 하여 ‘한국다움’으로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으며 단순히 '다수'이기 때문에 '전통'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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